[연대레터] 더, 잘, 연대하고 싶어서
어느덧 2022년을 한 손으로 셀 수 있을만큼 시간이 흘렀습니다. 2023년, 새해를 코앞에 두고 조금은 기다리셨을 마지막 연대레터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아, 저는 한국여성노동자회에서 일하고 활동하는 레나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
마무리 글을 쓰는 게 참 부담되면서도, 끝끝내 마침글을 쓰고자 했던 이유는 (약속한 시기를 어겨버렸고… 너무 늦어버렸지만…) 연대레터를 기다리실 구독자 분들과 연대레터를 여러번 읽어봐주신 분들에게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연대레터를 만들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도 설레었지만 발송 후에도 기대가 많이 되었거든요. 어떤분이 우리 연대레터를 열어보셨을까, 어떻게 보고계실까 궁금해 하며 발송 후 거의 매일 이메일 플랫폼을 들락날락했습니다. 어떤 구독자님은 5번이 넘도록 메일을 열어봐주시고, 또 어떤 구독자님은 일주일동안 매일매일 각기 다른시간대에 연대레터를 열어봐주셨습니다. 자꾸만 열어보고 싶은 이메일이라니! 제가 상상한 내용이 아닐 수 있지만, 페미워커클럽이 전하고 싶었던 연대의 감각이 잘 전달되고 있나보다, 싶은 마음이 듬뿍듬뿍 올라왔었어요. :) 연대레터를 통해 다시 한번 감사하고, 고맙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더불어 ‘연대’라는 키워드로 2022년에 페미워커클럽 멤버들과 함께 모임을 사부작 사부작 만들게 된 이유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2020년, 우리의 삶을 바꿔놓은 유래없던 감염병때문에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조심스러워지고, 기피하게 되고, 온라인을 통해 얼굴을 보는 일들이 많아졌던 시기. 그 해에 저는 참여자들을 모아, 함께 청년여성노동자의 관점에서 인터뷰기사를 작성하는 일을 진행했습니다. 참여자들과 함께 모이는 것, 강사들을 초청해 강의를 듣고 대화를 나누는 것, 기획안에 대해 토론하고 인터뷰이를 접촉하는 것까지. 사람들이 모여야 진행 될 수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서로의 안전을 챙기고, 짧지만 귀한 이야기들을 나눠준 이들과의 만남속에서도 조심하며 진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다보니 실무자(...)의 피로감은 상상 외로 엄청났습니다.
그럼에도 만나야 했습니다. 우리가 목표로 한 일이 있고, 하고 싶은 이야기와 말들이 있었으니까요.하지만 그 이후로 코로나19 확산이 심해져 비대면으로 전환했고, 2021년 페미워커클럽 모임도 비대면으로 진행했습니다. 당시에는 필요에 의해서,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무어라 말하기 어려운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무언가 아쉬움’. 올 해 페미워커클럽 멤버들과 세번의 모임을 하면서 찾은 표현은 ‘감각하지 못해 흘려보내는 감정에 대한 아쉬움’이었습니다. 코로나19 이후로 비대면을 통해 회의를 하거나 토론회, 강의 등을 참여하는 일이 많아졌거든요. 비대면이 장려(?)되고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많은 사람들이 삐그덕(?)거린다는걸 알게됐습니다.
모니터 화면을 통해 알게된 사람과 우연한 기회로 오프라인에서 만나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는데, 이 사람은 분명 같은 사람인데, 이상하게 어색했습니다. 상대도 어색해하는게 느껴져서 1시간 가량 대화를 하다가 어느 순간 말이 술술 이어지는 느낌을 받고 나서야 ‘아,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엔 탐색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당연하지만 잠시 잊었던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앉아있는 자세, 몸의 움직임, 잘 안들리지만 가끔은 크게 내뱉는 숨, 말하면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손과 눈과 몸, 각자의 방식으로 웃거나 인상을 쓰거나 누가봐도 고민하는 표정 등. 관찰자처럼 턱을 괴고 몸을 뒤로 빼 지켜보는게 아님에도 사람과 만났을때 느껴지는 것들.
이러한 감각은 의식적으로 알기위해 노력하는게 아님에도 느껴지는지라 사실, 정말, 솔직한 마음으로는..피곤합니다(!) 에너지를 주고받는다는건 ‘이만큼만 줘야지’ ‘요만큼만 받아야지’하면서 정해놓을 수 있는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 피곤함을 서로서로 주고받는다는걸 알기에, 피곤함까지 감내하며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효율과 필요를 우선순위에 두고 움직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효율과 필요성의 외피를 쓴 혐오와 차별이 세상의 속도를 더 빠르게, 더 무자비하게 몰아붙이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굳이’ 직접 만나는 시간을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비효율적이란 생각이 올라오기도 하고 때론 현실의 삶에 지쳐서 귀찮아 미루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도, 어떻게든 지금 머무는 자리가 아닌 다른 곳으로 움직이게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타인의 애달픈 마음에 공감하고, 분노하는 마음에 선뜻 화답하고 싶어서, 더 잘 연대하고 싶어서.
사실, 연대레터 작업을 해야겠다는 이유는 ‘페미워커클럽 멤버들과 오프라인으로 만나고 싶어’라는 단순하고 솔직한 욕망이 크게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같이 만나고 각자의 거리감을 존중하며 차근차근 접촉하고 싶은 우리 멤버들의 온기가 필요했었거든요. 아마 이건, 차별과 혐오로 판치는 2022년을 살아가기 때문일것입니다. 그래서 연대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지지않고 지치지 않으며 싸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고, 희망은 아주 구체적인 상황에서 드러나고, 우리는 언제나 연결되어있다는 말은 감각해보지 않고서는 알기 어려운 세상. 우리는 앞으로 연대할 일이 더 많아질 겁니다. 전기장판 위에 누워서 귤을 먹는게 행복인 평온하고 게으르지만 솔직한 마음을 데리고 연대의 장을 펼쳐나갈 예정이고, 그곳에서 페미워커클럽 멤버들과 함께 여러분을 만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