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요즘 밥줄을 좌지우지하는 주변의 많은 일로 잔걱정과 불안, 실패, 후회가 일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잠 못 이루기도 하고 갑자기 막연함에 집으로 가다가 울기도 해요. 그럴 때마다 곁을 스쳐갔던 말들이 있어요. ‘무소의 뿔처럼 가라’던가. 일희일비하지 말라던 그런 단단한 사람들의 말이요. <어메리칸 레볼루셔너리: 디 이볼루션 오브 그레이스 리 보그스> 다큐멘터리 속 그가 꼭 비슷했어요. 침 발라서 뚫릴 창호지 멘탈을 지닌 저로서는 흔들리지 않는 그의 초연함과 확신이 부러웠어요. 물론 그레이스 같은 사람은 못되겠다 싶었죠. 다큐를 보는 내내 우리는 그가 철인 같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약간의 흔들림도 없어 보이지만 유쾌한 그가 좋았어요. 한 곳에서 운동과 변화를 기다리고 찾아가는 방식, 낙관, 오랜 경험 속에서 얻은 강한 자기주장과 동시에 열려있는 마음. 모든 게 한 인간 안에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 신기했달까요. 가슴 한편에 담아뒀을 후회조차 자신의 길 속에 담아내는 담담함.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지치지도 않고 박 터지게 논쟁하는 그 덕분에, 허를 찔려 머뭇거리다가도 몇십년이 넘는 경험 앞에서도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그레이스를 보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습니다.
지금껏 제게 후회는 일부러 피하는 감정이었어요. 내 생각이 틀린 게 될까 봐, 쓸데없는 것들에 시간을 낭비해버린 게 될까 봐, 내 바닥이 드러나 버린 게 될까 봐요. 그래서 예민한 주제 앞에서 막연한 동일성으로 도망쳤지 않았을까요. 그치만 이제는 제 후회와 실패에 조금은 당당해지고 싶어요. 피하려다가 굴러떨어진, 엇나간 길이 아니라, 언젠가는 지나가야 했을 길이었다고 말이죠. 그 끝에 지금이 있으니 잠시 쉬어가게 되더라도 내 후회와 변화를 부정하지 말자고, 계속 부딪혀 실패하더라도 덜 미워하지고.
그래서,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논쟁하는 우리를 다시 보게 됐어요. 대충 비슷한 주장이 아니라 쟁점을 둘러싸고 정면으로 부딪혀 보고 싶어졌어요. 페미니즘을 알아가면서도, 제게 때로는 삼켜왔던 말이 있었어요.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였습니다. 분노하는 맥락을 이해해서인지, 굳이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 안에서 싸우기 싫어서인지는 모르겠어요. 그렇게 커다란 틀에서 비슷하면 됐다는 말로 담아뒀어요. 그러다 10년 친구에게도 선뜻 꺼내지 못한 말들이 이 모임에서 하게 되었어요. 함께 모여 글을 쓰며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먼저 내가 가졌던 가장 날것의 욕망을 털어놨습니다. 제가 쓰는 글이 조금은 달라지기 시작한 건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이건 꼭 말해야겠어”, “이 논쟁에서 피하지 않을래” 여노에서 마주한 연대를 통해 저도 다시 말하게 됐습니다. 저도 몰랐던 내면의 제 모습을 알게되고 지금껏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가고 있어요.
하루가 멀다 하고 삶을 무력하게 만드는 일이 쏟아지지만 그래도 서로를 정면으로 마주보며 더 말하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느리더라도 더 많이 부딪히고 이해하며 같이 걸어가기로요.
어느날, 같은 곳에서 혁명하는 유쾌한 할머니가 되어 만나길 바래요,😃